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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쟁이 그리고...
Annecy 안시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인 안시 호수와 알프스에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도시이다. 구 시가지를 흐르는 강물 옆으로 중세 시대 건물과 카페, 레스토랑이 조화를 이루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강 중앙의 옛 궁궐은 현재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선, 여러개 중 맞다 싶은 하나를 고른다. 삐죽 튀어 나오거나 굽이져 울퉁불퉁한 선들 그 선들이 이어져 그림이 되어간다. 여백에 남겨진 스쳐 지나친 잔상을 굳이 잊고자 한다. 선들로 뭉쳐진 한 곳에 다시 여러 선들을 모으면서 비어져가는 공간에 뭘 채울지 애써 고민하지 않는 연습을 한다. 어쩌다 공간을 스쳐 지나간 선, 지우거나 분리수거도 할 수 없어 마음 쓰이는 자욱들을 묻기 위해 또 다른 선으로 덮어 나간다. 다시 눈 들어 원래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어색하고 닮지 않은 구석으로 인해 그냥 중단하고 덮는다. 내가 그린 선들은 그렇게 스케치란 이름으로 남겨질 뿐... 우리는 여전히 온전하게 다 보지 못하고 또 온전하게 그려내지 못하면서 그것이 옳다고 고집한다.
때는 바야흐로 1974년, 내가 경남 진해에서 4학년을 마치고 5학년 초에 부산 수영초등학교로 전학을 온지 몇 개월이 흐르고 난 후다. 무화과 열매가 흐드러지게 열렸던 계절이었으니 9~10월 사이라고 기억이 된다. 당시 우리집은 학교까지 버스정류소 3개는 지나치는 거리였는데 약 30분 가량이 소요되는 길을 총총히 걸어서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와 함께 등하교를 같이 하던 친구들의 면면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지만, 그 중 유독 한 녀석의 이름은 아직도 내 추억의 언저리에 남아있는 것을 보니 그 놈과는 꽤나 친했던 모양이다. 몇 몇 친구 녀석들과 같이 하는 하교길은 학교 근처의 주택가 골목길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하는 루트를 주로 이용했고 그 주택 중에는 수령이 오래된 무화과나무가 더러 있었다. 그리고 ..
흰고양이는 죄다 흰색이라 선을 찾기가 어렵고 뒷태는 그리기가 쉽지않다. 그리고 고양이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동물은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찍고 그리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ㅋㅋ
1 장 해마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우동집으로서는 일년 중 가장 바쁠 때이다. 북해정(北海亭)도 이날만은 아침부터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보통 때는 밤 12시쯤이 되어도 거리가 번잡한데 그날만큼은 밤이 깊어질수록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10시가 넘자 북해정의 손님도 뜸해졌다. 사람은 좋지만 무뚝뚝한 주인보다 오히려 단골손님으로부터 주인 아줌마라고 불리고 있는 그의 아내는 분주했던 하루의 답례로 임시종업원에게 특별상여금 주머니와 선물로 국수를 들려서 막 돌려보낸 참이었다. 마지막 손님이 가게를 막 나갔을 때, 슬슬 문앞의 옥호막을 거둘까 하고 있던 참에, 출입문이 드르륵하고 힘없이 열리더니 두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6세와 10세 정도의 사내 애들은 새로 준비한듯한 트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