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무화과 나무 습격사건

깊은 밤을 날아서 2018. 4. 8. 16:01

때는 바야흐로 1974년, 내가 경남 진해에서 4학년을 마치고 5학년 초에 부산 수영초등학교로 전학을 온지 몇 개월이 흐르고 난 후다. 무화과 열매가 흐드러지게 열렸던 계절이었으니 9~10월 사이라고 기억이 된다.

당시 우리집은 학교까지 버스정류소 3개는 지나치는 거리였는데 약 30분 가량이 소요되는 길을 총총히 걸어서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와 함께 등하교를 같이 하던 친구들의 면면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지만, 그 중 유독 한 녀석의 이름은 아직도 내 추억의 언저리에 남아있는 것을 보니 그 놈과는 꽤나 친했던 모양이다.

몇 몇 친구 녀석들과 같이 하는 하교길은 학교 근처의 주택가 골목길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하는 루트를 주로 이용했고 그 주택 중에는 수령이 오래된 무화과나무가 더러 있었다. 그리고 몇 몇 집은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면 무거운 나머지 나무가지가 담 밖으로 축~ 허니 늘어져 있기도 했다. 우리는 등교길에 담 밖으로 늘어진 가지에 잘 익어서 일부는 쩍 벌어진 무화과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한 집을 지목하고 하교길에 녀석들과 임의로 수확을 해서 함께 나눠 먹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시절 우리에게 먹거리란 그리 흔하지 않았고 그나마 구멍가게에서 과자라도 사먹을 용돈을 들고 다닐만한 아이들이 몇 되지 않는 시절이기도 하지 않았던가.
한참 자라는 미래의 꿈나무인 우리들에게는 굳이 ‘한국본초도감’의 '건위청장(健胃淸腸), 소종해독(消腫解毒)'이라는 어려운 효능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그저 달달하고 씨가 고소하며 생무화과를 너무 많이 먹으면 입술이 짓무른다.'는 정도의 정보력으로도 얼마든지 먹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충분히 불태울 수 있는 일이다.
 
각설하고...하교길에 다신 뭉친 무화과습격 프로젝트 멤버들은 열매를 따려면 (그 당시 키가 그리 크지 않았던 어린이들이었기에) 누군가가 담벼락을 타고 뛰어 올라가 나뭇가지를 잡고 늘어지면 뒤에 있던 녀석들이 열매를 따는 방식이 주효하다는 결론에 합의를 했다.
이 때 담을 탈 수 있는 책임과 영광은 언제나 가위 바위 보(당시 우리는 ‘제비~셔이’라고 불렀다. 이 말은 제비뽑기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을 수 있다고 추측 해본다.)로 해결하는 것이 상식이다. 지금 내 기억에는 함께 했던 녀석들이 아마도 4~5명은 되었지 싶다.

우린 옹기종기 모여 담벼락 등반돌격대장을 선발하기 위해 운명을 건 '제비~셔이'를 하기 시작했다.
 
"제비~셔이", "제비~셔이"....

"ㅋㅋㅋ.....니다! 니가 타라“

이런 된장맞을....담벼락 등반돌격대장으로 그만 내가 낙찰되고 말았다. 간절하게 꼭 피하고 싶었던 보직이었는데 하필이면 내가 그 역할을 맞게 될 줄이야.....

무화과를 따는 녀석들이야 집안에서 인기척이 날 때 냅다 뛰면 그만이지만 나뭇가지를 잡고 늘어져야 하는 등반돌격대장은 벽을 보고 있어야 한다.
잡고 있는 나뭇가지가 다시 위로 올라가지 않도록 모든 힘과 몸무게를 실어서 주저앉다시피한 자세로 버텨야 하는 역할인데 이러한 이유로 가장 늦게 도망칠 확률이 높은 보직이렷다. 하지만 내가 누구 인가? 주어진 임무는 기필코 완수하고야 말겠다는 불타는 사명감에 충만한 대한의 꿈나무 아니었던가. 나는 담을 타기로 결심했다. 아니 탈 수밖에 없었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벽으로부터 멀찌감치 뒷걸음을 쳐서,
발돋움을 힘껏 한번 한 다음,
순간 가속력을 최대한 높여 뛰어서,
수직의 담을 달려온 가속도에 힘입어 두손과 두발을 이용해 후다닥 타고 올라가,
나뭇가지 하나를 휙~ 하고 낚아챈 다음,
축 늘어트리니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확조들이 냅다 달려들어 무화과를 따기 시작한다.

“와 진짜 많다. 와글 와글~ 빨리 따자 와글 와글~”

수확조가 시끄럽게 무화과를 거둬들이고 있는 순간에 나는 담장 안에서 터져 나오는 고성을 미처 듣지 못했다.

“누~고?”

순간 수확조들은 후다닥 뛰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들이 뛰는 모습을 미처 확인하지도 못 한 채 나뭇가지만 잡고 “빨리 따라”라고 만 외치고 있었고 급기야는 철대문을 열어젖히는 굉음과 “야 이새끼야~”하는 귀를 찢는 듯한 젊은 여성의 고함과 함께 그녀의 시야에 내가 포착이 되고 말았다.
나는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상사태가 발생되었음을 인지한 순간...

“허걱! 들켰다. 튀자.”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재빨리 놓고 우사인 볼트와 거의 같은 급으로 전속력을 내어 뛰기 시작했다. 어쩌겠는가? 일단 몸을 피할 수밖에 없는 다급한 상황에 길을 알든 모르든 뛰고 보는 게 상책이지...

그러나 나를 지목한 고성의 젊은 여성은 무화과를 손에 들고 나를 앞서 달리는 다른 친구놈들은 안중에도 없고, 지형지물에 다소 어둡기도 하고 두 손에 아무것도 없는 나를 향해 영화 주유소습격사건의 유호성과 같이 ‘무조건 한 놈만 팬다.’는 의지로 뛰어 오고 있지 않는가. 아! 무써버라....

뛰었다. 죽을 힘을 다내어 뛰었다. 뛰면서도 ‘이런 공포스러운 일이 왜 하필이면 나에게 벌어지나? 씨파~ 왜 저 여자는 다른 애들을 두고 나만 보고 달려온다는 말인가? 조또~’하며 나의 불운함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호통재라....더 큰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나는 전학 온지 몇 개월 되지 않았기에 큰 길은 숙지했어도 몸을 효율적으로 피할 수 있는 작은 골목길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지 않았었다.

“허걱~ 막다른 골목이다. 헉~ 헉~”

“이 일을 우짜노?”

하며 뒤를 돌아 본 순간 그 고성의 젊은 여성이 나를 비웃듯이 쳐다보며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까지 흘리면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닌가.

이쯤에서 그 여성의 인상착의를 밝힐 필요가 있겠다. 고성의 그 여자는 어깨가 강호동처럼 떡 벌어져 있었고, 팔뚝은 헤비급 세계챔피언이었던 권투선수 조지 포먼의 전성기 근육과 흡사했으며, 종아리와 허벅지는 코끼리 다리처럼 육중한 무게감을 지탱하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는 듯한 굵기로 한 대 걷어 차다면 나의 야리 야리한 척추쯤이야 단번에 두 동강이를 내고도 남음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얼굴은 못생긴 여자뽑기 전국대회에 나간다면 당연히 1등은 따 놓은 당상으로 가는 실눈, 납작한 코, 쿤타킨테의 두툼한 입술, 거무튀튀한 피부 그리고 세숫대야만한 얼굴크기에 그 얼굴과 같은 굵기의 목....아! 신이시여 진정 당신은 존재 하시나이까?

살면서 이렇게 절망적인 순간이, 이렇게 목숨을 위협당하는 급박한 순간이 하필이면 왜 나에게 찾아온다는 말인가? 난 나뭇가지만 잡고 늘어졌을 뿐인데 그 정도는 초딩 5학년 어린 소년의 애교로 봐 줄 수 있는 일 아닌가?

막다른 골목에서 마지막 대문을 등에 지고 숨을 헐떡이는 나는 완전한 절망의 늪에 빠져 눈앞이 캄캄했다. 정확히 나에게서 5미터 전방의 그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음흉한 미소를 머금고서 다 죽어 가는 먹이를 향해 입맛을 다시며 접근하는 맹수와 같이 천천히, 그리고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스탈링을 바라보는 한니발 렉터와 같이 음흉하고 잔인한 미소를 머금고 나에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4미터, 3미터.....
그녀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요 콩알만한 쓉새, 니 오늘 내한테 죽어봐라. 오데서 남의 집 무화과를 도둑질해 처먹노”

절체절명, 위기일발, 백척간두...이런 말이 딱 어울리는 순간이다.

‘이대로 맞아 죽는구나....’
‘날 버리고 간 친구들아. 만난지 몇 개월 안 되었지만 그동안 우정은 정말 고마웠다.’
‘부디 잘 살거라...천국에서 보자....안녕~’
'어무이, 아부지 소자 객사하게 생겼심더...부디 이 불효막심한 놈을 용서하이소.'

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나의 머리에는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처한 위기상황을 벗어 날 수 있는 전술이 전광석화같이 스치며 떠올랐으니...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것이로구나’
‘그래 저렇게 생겨도 여자는 여자다.’
‘나 같은 어린 아이가 저 고릴라 같은 여자를 공격할 수 있는 곳은 딱 한 군데 뿐이다.’
‘그래 가슴! 가슴을 머리로 들이 받는 거다’

이 얼마나 명석하고 빠른 판단력이란 말인가? 난 어리니 저 여자 가슴을 머리로 들이 받는다 하더라도 도망치기 적당한 순간적인 통증 이외는 별다른 사고는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스치면서 나는 이를 꽉 깨물고 그녀가 최대한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2미터, 1미터, 60센티 50센티...순간 나는 신장이 적당해서 내 이마가 그녀의 가슴정도 높이에 있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한발...두발...왔다. 이 때다. 그리고는 냅다 들이 받았다.

“퍽!”
“오매야!”

그 여자는 가슴을 감싸며 주저앉았고 나는 그녀를 뒤로 한 채 또 다시 번개같은 속력으로 전력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다행이 큰길로 접어들어 뒤를 돌아보니 더 이상 나를 추격하는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다. 난 살았다.....기뻐라.....이렇게 급박한 상황에서 명석하고 빠른 판단력으로 죽음의 순간을 모면한 나의 순발력에 스스로 찬사를 보내면서 유유히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먼저 도망간 친구들은 그 다음날 나에게.....ㅋㅋ

이렇게 무화과열매습격사건은 막을 내렸고 덕분에 그 집을 지나가는 길이 등하교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유일한 지름길임에도 불구하고 1년가까이 다른 길로 돌아 다녀야만 하는 수고로움은 스스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세월이 사십년을 넘기고서 돌이켜보니 지금쯤 그 여자는 육십이 넘은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녀에게는 전혀 잘 못이 없었지 않았는가. 그녀는 무화과 도둑질을 당했을 뿐이며 오히려 나의 이마에 흉부까지 가격을 당했던 폭력 피해자 아니었던가.

아 정말 졸라 미안하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지 모를 이제는 늙어버린 그 할머니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다.

단 한번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그 할머니 집에 울창한 무화과나무 한 그루 쯤은 심어드릴 수 있는데....

“할머니 누나, 미안해요....무화과 가지 붙잡고 늘어진 거, 또 힘들게 뛰게 만든 거, 그리고 여자의 소중한 가슴을 가격한 거,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어디 계시거나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셔요. 할머니의 가정에 행운과 복이 넘쳐나길 기도할게요....Adios Senorita”